(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중국 화웨이가 미국 제재 이후 60개 이상의 자국 반도체 기업에 투자해 '공급망 자립화'를 준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화웨이는 5나노미터(㎚) 양산에 이어 내년까지 3나노 양산에 돌입한다는 목표다. 중국 창신메모리(CXMT)는 내년 4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 양산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턱밑까지 쫓아온 형국이다.

2일 일본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화웨이는 2019년 미국의 대중(對中) 수출 규제가 시작된 이후 산하 투자 전문 자회사인 허블 테크놀로지 인베스트먼트를 통해 60개 이상의 자국 반도체 기업에 투자하거나 인수했다. 대미 의존도를 낮추고 자체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 공급망 자립화를 준비했다는 것이다.

화웨이는 지난 4월 미국이 엔비디아의 중국용 저사양 인공지능(AI) 가속기 'H20'의 수출을 막자, 즉시 차세대 AI칩 '어센드 920'을 공개하며 기술력을 과시했다. 어센드920은 연산 성능 900테라플롭스(Tflops) 이상, 메모리 대역폭 초당 4테라바이트(TB)의 성능을 보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화웨이는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반입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7나노에 이어 5나노 생산을 시작했다. 리테일뉴스 등에 따르면 화웨이는 내년에는 최첨단 공정인 3나노 칩 설계를 완료하고 중국 반도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SMIC에 주문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CXMT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업체들이 패권을 쥐고 있는 고부가·고사양 D램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시장조사기관 트랜스포스에 따르면 CXMT는 레거시(범용) 메모리인 더블데이터레이트(DDR)4 출하량을 서서히 감산, 올해 연말쯤 생산을 중단하고 DDR5 생산에 집중할 것으로 전해졌다.

동시에 CXMT는 연내 HBM3 시제품을 생산, 내년부터 본격 양산에 나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2027년에는 5세대인 HBM3E를 개발한다는 스케줄을 짰다. CXMT의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5% 수준이었지만, 올해는 10% 초중반까지 덩치를 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업계는 중국 반도체의 맹추격을 무겁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SK하이닉스(000660)·삼성전자(005930)가 아직 개발 속도와 점유율에서 크게 앞서고 있지만, K-반도체의 독주 체제가 조만간 중국 업체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수율 문제로 애를 먹는 3나노 공정을 화웨이가 추격하는 장면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업계 관계자는 "화웨이는 (EUV 장비 반입이 불가능해) 심자외선 리소그래피(DUV) 장비를 사용하기 때문에 수율이 한참 낮고, CXMT도 선단 공정 수율이나 패키징 기술이 떨어지는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추격 속도가 놀라울 수준으로 빨라졌다. (중국이) 가격 경쟁력까지 갖추게 된다면 역전도 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중국과의 격차를 벌리기 위한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10월부터 HBM4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HBM4는 올 초 수율 테스트에서 60%를 넘겼는데, 최근에는 70%까지 끌어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이 물량은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그래픽처리장치(GPU인) '루빈(Rubin)'에 공급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HBM3E 12단이 최근 엔비디아의 '베어다이'(bare die) 테스트의 핵심 관문을 통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베어다이 테스트는 GPU에 탑재되기 전 메모리 자체 성능을 평가하는 단계로, 사실상 양산 가능성을 확보했다는 뜻이다. 현재는 최종 패키지 퀄 테스트만 남겨둔 상태로, 이르면 6월 중 엔비디아 공급망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인재 유치'에도 사활을 걸고 있다. 삼성전자 미주법인(DSA)은 올 초 TSMC에서 21년간 재직했던 마거릿 한 전 NXP반도체 글로벌 구매·조달 부문 부사장을 파운드리 총괄부사장으로 선임했다. 1분기에만 애플, 지멘스, 퀄컴, GM 등 글로벌 유수 기업 출신 임원들을 영입했다.

SK하이닉스도 지난달 30일(현지 시각)부터 이달 1일까지 미국 캘리포니아서 진행된 '2025 SK 글로벌 포럼'에 곽노정 대표이사 사장(CEO), 김주선 AI 인프라 사장(최고마케팅책임자·CMO), 안현 개발총괄 사장(최고개발책임자·CDO), 차선용 미래기술연구원장 등 C레벨 경영진이 총출동해 현지 인재 교류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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