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 투자 사기의 늪…①봉사 단체라더니 실체는 사기 조직
봉사 활동비로 투자자 유인한 뒤 투자 유도
충북서만 피해자 300명…전국 수천명 될듯
- 박건영 기자
(청주=뉴스1) 박건영 기자 = 충북 청주에 거주하는 A 씨(60대)는 지난해 6월 지인으로부터 아주 솔깃한 이야기를 들었다. 봉사활동에 참여하기만 하면 활동비를 지급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용돈도 벌고 지역사회에 좋은 일도 할 수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A 씨는 곧바로 소문의 봉사단체를 찾아갔다. 이후 이 단체가 주관하는 환경정비 봉사활동에 참여했고, 실제로 현금 5만 원을 지급받았다.
돈의 출처가 궁금하긴 했지만, A 씨는 별다른 의심없이 꾸준히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그런데 약 한 달이 지나자 활동비 지급 방식이 바뀌었다며 현금이 아닌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한 적립금 형태로 활동비가 지급되기 시작했다.
A 씨가 다단계 투자 사기의 늪에 빠지게 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활동비를 받기 위해 설치한 전용 앱에는 한 외국계 회사에 투자를 유도하는 내용이 잔뜩 있었다. 이 기업의 AI 기술을 활용한 농업 사업에 투자하면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A 씨는 반신반의했으나 봉사단체는 "이미 검증이 끝난 확실한 사업이고, 손해를 보게 되면 보상해 주겠다"며 투자를 끈질기게 제안했다.
그는 고민 끝에 160만 원을 투자했으며 일주일 뒤 수익금 약 15만 원과 원금을 돌려받았다.
A 씨는 정말 돈이 회수되는 것을 보고 추가 투자를 결심했다. 수익금의 일부가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되는 기부금으로 사용된다고 하니 그나마 남아있던 자그마한 의심마저도 거둬버렸다.
'레벨(직급)'이 높아질수록 수익금을 더 받을 수 있다는 단체의 말에 점점 큰돈을 내놓았고, 그의 투자금은 어느새 약 2억6000만 원까지 불어났다.
신규 투자자 모집시 떨어지는 수수료 2%를 받기 위해 지인들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
하지만 지난달 5일 A 씨에게 갑자기 큰 시련이 닥쳤다. 단체의 본사가 잠적하면서 앱이 먹통이 되더니 한순간에 투자금이 전부 날아가 버린 것이다.
이후 며칠이 지나도록 앱이 정상화되지 않자 A 씨는 그제서야 이 모든 것이 사기극이었음을 알아차렸다.
봉사단체를 총괄 지휘한 모 투자회사가 외국계 기업의 한국지사를 사칭하며 고수익을 미끼로 투자자들의 돈을 가로채는 전형적인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사기)'였다.
A 씨는 "아내와 함께 평생 모은 돈을 잃은 지 한 달이 지났는데, 그동안 잠을 제대로 자본 날이 없다"며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으려고 욕심을 냈다가 가정이 풍비박산이 났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책임자들에게 항의도 해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무책임한 답변뿐"이라고 했다.
A 씨처럼 봉사단체를 가장한 사기 조직으로부터 피해를 본 이들은 충북에서만 최소 약 300명, 피해액은 수십억 원대에서 많게는 수백억원대로 추정된다.
이 단체가 비슷한 시기 충북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활동했다고 하니 피해자들은 전국적으로 약 수천~수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전국 각 경찰서에 이 사건과 관련한 고소장이 접수되고 있으며, 사건을 배당받은 서울경찰청은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약 1억 원을 잃었다는 60대 여성 B 씨는 "투자를 권유할 때는 온갖 감언이설을 늘어놓더니 지금은 아무도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다"며 "더 이상 피해자가 생겨나지 않도록 하루빨리 관련자들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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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흔히 '피라미드'라 불리는 다단계 사기는 날이 갈수록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최근에는 암호화폐와 금융 투자를 미끼로 중장년층을 노린 '폰지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뉴스1은 유사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지난달 전국에서 발생한 신유형의 다단계 투자 사기 수법을 짚어본다.